1. 'The Refugee'-20세기 디아스포라의 자화상
한 남자가 몸을 웅크린채 방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다. 두 손은 깊게 숙인 머리를 감싸고 있고, 의자 옆에 놓여진 지
팡이와 간소한 짐 보따리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그의 방랑 생활을 암시한다. 감옥을 연상케하는 방 한 켠에 책상이 있고, 그 위에는 지구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독일의 검은 그림자가 유럽을 휩쓸고 있다. 문 밖에는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메마른 나무가 두 그루 있고, 그 주변을 불길한 까마귀가 선회한다. 그림의 모든 요소들은 남자의 깊은 절망감을 드러낸다.
디아스포라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유대계 디아스포라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Felix Nussbaum)이 이차세계대전 발발 하루 전에 완성한 이 그림의 제목은 '피난민'(The Refugee)이다. 전쟁 당시 300만 ~ 600만명 유대인들의 마지막 ‘피난처’(refuge)가 결국 아우슈비츠 같은 ‘죽음의 수용소’였다는 것을 상기하면 그림의 제목이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세계’를 무대로 일어난 전쟁답게, 2차세계대전은 누스바움이 속해있던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도 깊은 상흔을 남기며 수많은 피난민들을 만들어 냈다.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에 또 다시 일어난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누스바움이 그의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깊은 절망감은 비단 유대인 디아스포라만의 것이 아닌, 아시안 디아스포라를 포함하는, 20세기 모든 디아스포라들이 공유하는 감정인 것이다.
자신의 디아스포라적인 경험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던 누스바움처럼, 많은 아시안 디아스포라들도 그들의 트라우마적인 경험이 남긴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토대로 예술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Gayle Sato가 주장한 기억의 ‘문화적 재현’(Cultural Reenactment)에 다름 아니다.
이 글에서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의 포로수용소 감금, 한국의 종군 위안부 여성들, 그리고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기억을 토대로한 아시안 디아스포라의 문화적 재현을 통해 고통과 기억의 연대 가능성 및 증언의 중요성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2. 대통령 특별 명령법 9066: 어제는 모범시민, 오늘은 적국시민
1941년 12월 7일에 일어난 일본의 진주만 습격은 미국에 살고 있던 일본계 미국인에게 ‘적국 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이듬해 2월 19일 루즈벨트 대통령의 ‘대통령 특별 명령법 9066’ 인가는 당시 미국의 주요 군사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11만 '적국시민’의 포로수용소 감금을 합법화 했다.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 집단보다 더욱 성실히 일하고 집단 내 단결성도 긴밀해 비교적 빠른 경제적 안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던 ‘모범 이민자’들이 하루아침에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어 2~4년 동안을 포로수용소에서 보내야했다.
“수십 년 동안 일해서 모은 재산, 가정, 땅, 집, 미국에서의 꿈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순간” 이었으며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도 첩보 행위나 반국가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중에 하겠다는 증거다”라는 당시 캘리포니아 주 검찰총장 월 워런의 황당한 논리는 미국과 일본의 전쟁으로 인한 반(反)일본계 미국인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Elaine Kim에 따르면 철조망이 둘러 쳐져 있고 무장 군인들이 순찰 돌았던 포로수용소에로의 감금은 역설적으로 ‘강제된 여가’(forced leisure)를 의미했고, 이것은 감금되기 전까지 묵묵히 일만 했던 많은 일본계 미국인에게는 어른이 되고 난 후 처음 얻는 여유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든, 기대하지도 않던 한가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숨겨진 예술적 욕망을 발견해서이든, 수용소내 예술 수업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고 한다. “고통 받는 영혼을 달랠 수 있는 예술의 힘”을 믿었던 Chiura Obata는 수용소 내에 임시 예술학교를 세우고 6살 ~ 70살까지의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에게 예술 수업을 제공했다.
그가 수용소내 생활의 단면을 스케치한 ‘슬픈 곤경’(A Sad Plight)은 전쟁의 여파로 자신의 집을 떠나 이산의 삶을 살거나 수용소에 억류되어야 했던 20세기 디아스포라의 절망감과 고립, 소외의 감정을 누스바움의 'The Refugee'와 놀라울 만큼 흡사하게 보여준다. 누스바움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슬픈 곤경’내의 인물들을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숙이며 깊은 절망감을 나타낸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고개를 두 손에 파묻으며 'The Refugee'속의 디아스포라와 거의 흡사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또한 인물들 주변의 짐 보따리는 전쟁에 의해 강제된 이동의 기억을 공유한다.
다른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을 기억하며 Henry Sugimoto가 1965년에 완성한 작품, ‘Jerome 캠프로의 도착'(Arrival at Jerome Camp)도 ‘The Refugee’, ‘A Sad Plight’과 유사한 구도를 보여준다. 앞의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린 사내와 가족 주위로 짐들이 놓여있다. 사내의 한 손은 ‘삶’(life)이라는 영어 단어에서 철자 ‘e'를 가리고 있는데, 이것은 수용소내의 삶이 온전한 삶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위 세 그림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만들어진 그림이지만 세계전쟁으로 인한 20세기 디아스포라의 고통과 기억이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Gayle Sato는 Caroline Simpson의 연구를 인용하며 이 4년 동안의 일본계 미국인 포로수용소 감금이 미국 역사에서 지워지고 ‘실존의 부재(absent presence)'로 남은 이유는 이것이 ‘이민자의 나라’, '세계에 민주주의 가치를 전파하고 이끌어나가는 나라'라는 미국의 정체성 및 국가 이미지에 “끊임없는 위협”(perpetual threat)이 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일련의 예술작품들은 이처럼 미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행해진 ‘실존의 부재’에 대한 응답이며, 이를 통해 우리에게 이러한 고통과 기억의 문화적 재현의 중요성 및 연대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3. 종군위안부: ‘부끄러운건 우리가 아니고 너희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엘리 비젤(Eliezer Wiesel)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를 상징하는 장르가 비극이고 근대 유럽의 시민 사회를 상징하는 장르가 소설이라면 현대를 상징하는 장르는 증언”이며 그 배후에는 “세계 전쟁의 폭력”이 있다고 한다. ‘세계 전쟁의 폭력’이 낳은 20세기의 ‘증언문학’ 또는 ‘생존자문학’은 재일 조선인 지식인 서경식 교수의 말에 따르면 “단순히 살아남은 자들의 문학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이해하고, 묘사할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하고, 전달할 수 없는 상념을 전달하도록 운명 지워진 문학, 태생적으로 갈가리 찢긴 문학”이다.
일제 강점기 및 2차 세계대전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 여성들은 ‘종군위안부’라는 역설적인 이름하에 그 누구도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했고 ‘갈가리 찢긴’ 마음과 몸을 안고 그 기억과 아픔을 숨긴 채 살아왔다. 하지만 서경식 교수에 따르면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증언의 시대’가 시작되는데, 그는 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으로 1991년 8월 서울에서 있었던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증언을 예로 든다.
그에 따르면 할머니의 증언은 그동안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 간의 깊은 괴리감, 즉 “결국 진실은 검증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또는 “어차피 일본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식의 생각”이 주는 “단절의 구조가 개인의 이름을 밝히는 것에 의해 무너진” 중요한 사건이다. 반세기 가까이 쉬쉬해왔던 일본군의 만행이 ‘살아 있는 증거’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Gayle Sato 또한 종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일본 정부나 군대의 자료에 의지하는 경향, 항일 양국의 편향된 역사 교육의 한계를 지적하며 개인의 증언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Given these limitations of official histories and the fact that Japanese government and military documents comprise most of the available records of comfort women, their[comfort women's] personal testimonies are viewed as crucial to any attempt at rectifying history or proving just compensation."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종군 위안부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며 10년 넘게 지난한 법적 투쟁을 벌였던 송신도 할머니의 증언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할머니는 16살 때부터 23살 때까지 일본군의 성노예로 끔찍했던 경험을 하고 난 이후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고 마음의 문을 꽁꽁 닫은 채 반세기 가까이 살아왔다.
일본에서 양심적인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할머니는 사람들이 자기 말을 안 들어주거나, 들어주더라도 믿지 못하거나, 또는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정말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를 종종 표출하시는데 이것은 서경식 교수에 따르면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을 증언해야 하는 자의 공통된 아포리아다.
"일상의 한계를 넘어선 경험은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는다 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증언자라는 존재는, 어떤 한계를 넘는 체험을 증언해야 하 는데, 그것이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지만 안 할 수 없고 안 하면 안 되는, 그런 모 순에 처한 이들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보살핌, 그리고 일본과 한국에서의 증언활동과 그것을 들어주고 할머니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러한 아포리아를 극복하고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된다. 비록 할머니의 지난 10년간 법적투쟁은 패소로 막을 내리고 일본에서는 ““위안부씨, 일본을 위해 일해줘서 고맙소” 하는 따위의 만화”를 그리며 “증인 개개인을 다시 한 번 죽이는 것과 똑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지지 않았’으며 할머니를 비롯한 전 일본군 종군위안부들의 증언을 통한 기억의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4. 미국의 베트남 참전용사여,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본받으라
세계 최강국임을 내세우던 미국의 자존심은 베트남 전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나약한세대'(The Soft Generation)에게 전쟁의 끔찍한 참상은 그들의 뇌리에 박힌 채 트라우마로 남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참전용사들에겐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의 디자인 공모에 1441:1의 경쟁률을 뚫고 21살의 아직 철도 들지 않았을 애송이, 전쟁은 구경도 못해본 ‘여자’ 대학생, 결정적으로 ‘백인’이 아닌, 오히려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베트콩을 기억나게 하는 ‘아시안 아메리칸’인 Maya Ling의 작품이 선정됐다는 소식은 다시 한 번 그들을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치게 했다.
그들에게 기념비의 V모양이 반전 시위자들의 평화 사인으로 보일리 만무했다. V는 그들에게 Vietnam이라는 적국, Victim이라는 자신들의 잊고 싶은 과거, 또는 패배한 남성성에 도전하는 여성성(Vagina)을 의미했다. 하지만 미국의 “참전용사들, 국회의원, 공무원들의 통렬한 비난”을 Ling은 꿋꿋이 견디며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고수했고, 베트남 기념비는 수백만 명의 방문객들에게 “기억과 슬픔의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베트남전 진실위원회는 베트남에 평화역사기념관을 지었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원통하게 죽은 원혼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놀랍게도 이 평화역사기념관을 설립하는데 드는 수천만 원의 비용은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셨던 문명금, 김옥주 두 할머니가 모두 부담하셨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도 쓰라린 전쟁의 경험을 겪었던 두 할머니께서 다른 나라의 이름 모를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그동안 국가와 민간단체에서 보내준 돈을 모아 헌납하셨다.
위의 두 가지 예는 고통의 연대가 인종, 국경을 초월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홍구 교수의 지적처럼 “고통의 연대, 고통 받은 자들이 서로 아픔을 나누며 힘을 모을 때 고통은 가벼워지고, 또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일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V. 예술을 통한 디아스포라적인 고통과 기억의 연대를 꿈꾸며
‘고무신 무더기 위에 13획’은 오래 전 독일로 건너가 간호사로 일했던 코리언 디아스포라 송현숙 화백이 종군 위안부로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을 기억하며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또한 송화백이 200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60주년 기념일에 그린 그림이기도 하다.
2005년 독일의 한국인 화가, 일제강점기의 위안부, 2차 대전 당시의 아우슈비츠희생자라는, 서로 시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인물들이 디아스포라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고, 이 연대는 디아스포라적인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한 예술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예술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 타인은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서경식 교수의 말대로 디아스포라가 “‘근대 이후’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형식”이라면, 근대 이후를 살아갈 우리 모두, 디아스포라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서경식.디아스포라 기행: 추방당한 자의 시선. 김혜신 옮김 서울:돌베개, 2006.
______.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이목 옮김. 서울:돌베개, 2007.
서경식, 타카하시 테츠야.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김경윤 옮김 서울:삼인, 2002.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울:돌베개. 2007.
장태한. 아시안 아메리칸-백인도 흑인도 아닌 사람들의 역사. 서울:책세상, 2004.
한홍구. 대한민국史 2권, 서울:한겨례신문사, 2003.
Kim, Elaine H. Fresh Talk Daring Gazes. Lond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
Sato, Gayle. "Asian Literary History: War, Memory, and Representation"